발트해가 내려다보이는 카페 우르술라(Cafe Ursula)에 와있다.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여자 넷이 편안히 맥주 마시는 모습으로 엔딩을 장식하는 곳이다. 사흘 만에 갠 하늘이 맑고 화사해 테라스 자리에 앉았다. 오늘따라 갈매기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그득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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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모메 식당은 이번 북유럽 여행을 결정하고 처음 보게 된 영화였다. 극 중 인물들의 각양각색 사연이 하나의 굵직한 우정으로 물들어가는 전개가 인상 깊게 남아있다. 그들은 모두 남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다. 낯선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꼭 자기 일처럼 안타까워한다. 그것은 소신 있고 유연하게 삶을 베푸는 주인공 사치에로부터 시작한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어느새 이들의 다정함이 브라운관 밖으로 흘러나온다. 당시 출국을 며칠 남겨두지 않아 예민하고 날 서 있던 나의 마음도 덩달아 다독인 작품이었다. 문득 그 날을 떠올리니 멀리 수평선처럼 마음이 반듯해진다. 해가 지지 않은 푸른 바다를 보며 남은 시간을 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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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헬싱키의 도시 풍경은 스톡홀름과는 부쩍 달랐다. 으레 노르딕 4개국은 패스트푸드점의 햄버거 세트처럼 비슷할 줄 알았던 나의 큰 착각이었다. 아무 정보 없이 디딘 헬싱키는 새로운 도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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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보니 건물 양식이 예사롭지 않다. 대단히 장식적이고 고풍스럽다. 때때로 경건한 분위기마저 흐른다. 탄성을 자아내는 미감은 없지만 계속 눈길이 간다. 새로운 궁금증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국가 하나가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바로 러시아였다. 여러 매체를 통해서 보았던 러시아의 건축 양식을 닮아 있었다.
헬싱키랑 러시아가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 세계사 수업에 전혀 흥미가 없던 학창 시절의 뒤늦은 학구열이 불타오른다. 얼른 호기심을 해결해야 하니 오늘도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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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생각해 보니 핀란드는 동쪽으로 러시아, 서쪽으로는 스웨덴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찾아보니 이 두 나라의 지배를 받았던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마지막 100년이 넘는 시간을 러시아의 통치하에 있었고, 1917년에야 비로소 독립한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조금씩 차갑고 이질적으로 느껴지던 이유를 비로소 알았다. 노르딕 4개국 중 유독 맑고 청정한 느낌으로 닿았던 핀란드였다. 문득 우리나라의 과거사가 겹쳐 마음 한구석이 아릿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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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길고 늘씬한 것이 주는 근사한 분위기만큼 짧고 아담한 것이 주는 친숙한 멋을 좋아한다. 시내에 도착해 제일 먼저 마음을 설레게 한 것은 짤막한 녹색 트램이었다. 위풍 있는 모습으로 눈앞에 쓱 나타나 이내 쏙 하고 사라지는 모습이 귀여워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고작 세 칸뿐인 전차라니. 그 짧은 몸으로 부지런히 시내를 오가며 도시의 생기를 더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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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여성 운전사를 자주 만날 수 있었는데, 한 날은 운전석에서 고요한 모습으로 뜨개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소 피곤한 몸으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는데 이 정겨운 모습에 기꺼이 멈춰 서서 반갑게 카메라를 들었다. 무겁고 지친 것들은 저만치 밀어놓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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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싱키는 생각보다 더 자그마한 도시다. 운동화를 고쳐 신고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중앙역이 보인다. 조금 더 걷다 보면 금세 청록빛 바다가 펼쳐진다. 대관람차와 어울리는 항구, 귓가를 맴도는 핀란드어, 어디선가 울리는 거리의 연주가 눈과 귀를 새롭게 한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고는 이내 고개가 자동으로 반쯤 기울여진다.
'나의 두 다리는 아직 활기가 넘치는데...'
스톡홀름 산책길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식은 죽을 먹고 뜨거운 죽까지 하나 더 먹을 수 있는 기세였다. 어디든 갈 준비가 되어있으니 조금 더 걸어보기로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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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거닐다 촛대가 놓인 집을 자주 보았다. 한낮에도 촛불이 일렁이는 창가 옆을 스치길 여러 번이었다. 겨울보다 부쩍 길어진 여름의 낮에도 촛불에 의지해 그림자가 드리워진 실내의 풍광을 가꾸는 사람들. 칠흑 같은 겨울에는 이 작은 초 하나가 공간에 얼마나 많은 온기를 더했을까. '시간을 느끼며 사는 삶'을 중요하게 여기는 북유럽 사람들의 철학과도 가장 맞닿은 사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 역시 이곳에 와서 초를 가까이 두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촛불을 켜고 조용히 파이를 쌓아가는 시간을 즐긴다. 오래된 촛대를 하나씩 모아가는 재미도 더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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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라 먹기 어려워 모두 다 맛보고 싶은 31가지 아이스크림 같은 헬싱키의 골동품 상점. 넓은 공간 안에 다양한 품목의 물건이 반기는데, 평일 서너 시간만 짧게 운영해 번번이 마음 졸이게 한다. 굳게 마음먹고 촘촘히 시간을 계산해서 가야 한다. 욕심과 만족의 선을 잘 타야 하는 것도 물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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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제품을 대표하는 가장 친숙한 브랜드로 '아라비아 핀란드(Arabia Finland)'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바로 그 핀란드에서 만들어진 가장 풍성한 컬렉션을 만나고 있다. 한국에서 익숙하게 보던 모델에서 벗어난 형태와 색감, 디테일을 살피는 재미가 톡톡하다.
이따금씩 아라비아 핀란드의 초기 모델로 추정되는 것들이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소리 없이 나를 바라본다. 이에 질세라 나도 루비처럼 선명한 붉은 선을 연신 들여다본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연말의 크리스마스가 떠오른다. 이 위로 무엇을 올리면 좋을지 마음속에 그려보는 일은 즐겁다. 아무래도 다시 만나보기는 어려울 테니 자연스레 구매로 이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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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알이 붉고 매끈한 빛깔이 탐스러워 구매한 헬싱키 딸기. 확신의 찬 손놀림으로 정성껏 씻어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는데 애석하게도 물딸기였다. 단단한 과육에 이런 밍밍한 맛은 처음이었다. 기대도 서운함도 나의 몫인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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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목요일마다 새벽 세 시 알람 소리에 부스스 일어난다. 한국 시각으로는 오전 열 시. 맑고 개운한 아침에 파이 레터가 닿길 바라는 마음으로 정한 나와의 약속 시간이다.
간밤 사이 수십 번 매만져 제법 살이 오른 글을 마주하며 전송 버튼을 누른다. 실수 없이 잘 도착해야 할 텐데... 걱정과 염려, 안도와 설렘 어딘가에서 일주일 간 묵혀둔 긴장이 가장 먼저 풀린다. 그리고 나는 다시 깊은 잠에 빠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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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면 어김없이 한 통의 메시지가 와있다. 성수동 숍 마우어의 마지막 매니저로 함께 일했던 연희언니의 메시지이다. 오늘도 편지를 잘 읽었다는 다정한 인사, 멀리서 날아오는 그 세심함에 이국에서 맞는 나의 아침은 부쩍 따사롭다.
나는 언니가 보낸 메시지를 읽는 시간을 아낀다. 그 담백한 감상평 뒤로 이어지는 혼자만의 여운을 즐긴다. 고마운 사람이다. 그런 언니를 생각하면 한지에 물결이 스미듯 내 마음엔 온기가 퍼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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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동료로 만나 친구가 되었다. 나이와 관계를 벗어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감사한 일이다. 때때로 조금 깊은 고민도 언니에겐 스스럼없이 얘기한다. 그럼 우뚝 선 등대가 되었다가 또 어느 날은 푸근한 언덕이 되어준다.
언니는 언제나 상대의 안부를 먼저 묻는다. 동료 시절부터 지켜본 언니의 변하지 않는 습관이다. 오늘도 주저리 주저리 떠드는 나에게 언니는 물었다. 낯선 곳에서 별 탈 없이 잘 먹고 지내는지. 그럼 나도 따라 묻는다. 더위가 시작된 한국에서 지치지 않고 평안하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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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챙기는 일이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평범한 우리가 스스로를 잘 보살펴야 세상이 튼튼해지고 유연해질 수 있다. 휴식을 누릴 때 이기적으로 되어라."
왠지 오늘 평소와 다르게 조금 지쳐 보였던 언니에게 이 문장을 건네고 싶다. 나를 보살피는 일이 곧 다른 사람을 위하는 일이라고. 언니 자신을 살뜰히 돌보는 이기적인 여름을 보내라고 말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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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작할 수 없거나 짐작 가능한 평범한 사연을 가진 표정의 헬싱키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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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연어 수프 한 그릇에 도전한다. 감자, 당근, 양파 등 친숙한 재료에 연어와 생크림을 넣어 따뜻하게 끓여 낸 수프로, 이 나라 사람들은 핀란드식 국밥이라고 부른다. 오랜 시간이 깃든 시장에서 가장 핀란드다운 전통 요리를 맛보고 싶었다. 과연 그 맛은 어떨까. 편안히 먹을 수 있는 구석 자리를 찾아 냉큼 앉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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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울 한가득 수프가 나왔다. 자세를 고쳐 앉고 숟가락으로 한 번 휘휘 저어 본다. 뭉텅뭉텅한 감자, 두껍게 채 썬 양파와 당근, 네모난 연어가 보인다. 둥둥 떠 있는 재료를 하나씩 차곡히 숟가락에 담아 한 입 가득 넣는다.
깊고 짭짤한 고소함이 확 올라온다. 기름지고 농후한 맛 사이로 딜이 주는 풍미가 더해진다. 생각보다 연어의 비린 맛이 적어 꿀떡꿀떡 잘 넘어갔다. 기대 이상으로 맛이 좋았다. 곁들여 나온 빵까지 촉촉하게 적셔 먹었다. 아낌없이 들어간 재료에 조금씩 배가 불러갔다. 그릇을 다 비웠을 때는 사이다 한 잔을 부르는 느끼함이 슬쩍 따라왔지만 그건 나의 촌스러움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그럼에도, 이번 여정에서 맛본 가장 기억에 남을 감칠맛임에는 분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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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6월 하순, 이곳에서는 여름 최대 축제가 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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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를 비롯해 북유럽과 발트해에 있는 국가들이 기념하는 여름의 한복판, 일 년 중 해가 가장 긴 날인 '하지'를 축하하는 날이다. 옆 나라 스웨덴에서는 '미드소마(Midsommar)'라고 하고 이웃 나라들도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이날을 부르는데, 핀란드에서는 '유하누스(Juhannus)'라고 한다. 기나긴 겨울을 보내고 찾아온 여름을 힘껏 껴안는 날, 그 찬란한 계절 중앙에 나도 서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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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였던가, 여행 첫날부터 이미 상점 곳곳에는 "Hyvää Juhannusta! (즐거운 하지 보내세요!)" 라는 메시지가 자주 눈에 띄었다. (그리고 저것이 바로 귓가 너머로만 듣던 그 휘바~(Hyvää)였다)
핀란드인들은 도시를 떠나 뫼끼(Mökki, 호숫가 쪽에 짓는 오두막, 여름 별장)가 있는 시골로 가 꼬꼬(Kokko, 5m 높이로 피우는 거대한 모닥불)를 피우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긴 여름을 만끽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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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나만의 방식으로 하지의 밤을 즐겨 본다. 연한 쪽빛으로 물드는 헬싱키의 자정을 담았다. 대략 세 시간 정도의 어두움이다. 조금 심심하니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작은 목소리로 혼자 나지막하게 외쳐본다.
"Hyvää Juhannust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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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보다 일찍, 먼 길을 나설 채비를 마쳤다. 한국에서 세운 두 번째 목표를 위해, 핀란드 건축의 거장 알바 알토(Alvar Aalto)의 집(House)과 건축 사무소(Studio)를 가는 날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해 어슬렁어슬렁 동네를 거닐었다. 헬싱키 외곽에 있어 시내보다 조금 더 차분하고 순탄해진 공기의 흐름이 좋다. 갈매기는 자취를 감추었고 작은 새들이 낮은 곳에서 지저귄다. 넘실대는 나무, 다채로운 색의 아파트가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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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토의 하우스를 먼저 찾았다. 홈페이지로 미리 표를 구매해 약속한 시각에 문을 두드리면 친절한 재단 직원이 맞이한다. 초롱초롱한 눈빛을 장착한 열다섯 명의 방문객과 함께 소규모 견학이 시작된다.
이 얼마나 기다리던 시간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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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로 기다란 창문과 높은 층고, 개방감, 자연스러운 구획과 단차, 햇살이 들어와 빛으로 어룽지는 마룻바닥. 정갈한 시간의 옷을 입어 고운 노란빛을 띠는 자작나무의 온기가 사방으로 퍼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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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를 만들기 전에 사무실로 사용하던 작업 공간을 품고 있다. 일본 대사 부부와 친해 일본의 영향을 받은 대나무 발, 수납함도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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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알바 알토가 첫 월급으로 구매한 폭신한 소파, 아이노 알토(Aino Aalto, 알바 알토의 첫 번째 아내)의 오래된 피아노, 핀란드의 호수를 닮은 유리 화병이 보인다. 알토 부부가 이탈리아 여행길에 가지고 온 화려한 의자, 식사 시간에 나누는 대화 소리를 흡수하기 위한 울 소재의 갈색 벽은 다이닝 룸을 가득 채운다. 이야기를 담은 사물을 보는 건 언제나 행복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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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 회화, 식물, 소품 어디 하나 눈 둘 곳이 없다. 이 안락한 공간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건 헬싱키를 온 이후 누리는 최고의 사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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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알토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알토 하우스에서 십분 남짓한 거리에 있다. 공교롭게도 하우스 투어에서 만난 일행과는 계속 마주치게 된다. 특히 사진 속 부부와는 수시로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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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이지 않은 구조의 일층 다이닝 룸에서 투어가 시작했다. 현재 재단에서 공간 전체를 실제 사용 중이라는 설명과 함께 가로로 길게 난 창문을 강조한다. 자연광이 건물 구석구석을 비출 수 있도록 햇빛이 굴절되는 각도까지 계산해 설계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들려준다. 그중 유일하게 직사광선이 비치는 자리 하나는 재단의 인턴이 사용한다는 여담이 이어졌다. 순간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어느 나라나 똑같군... 하지만 알바 알토 재단의 인턴이라면 그 정도는 감내할 수 있지 않을까.
잠시 재단 인턴이 된 나를 상상해보고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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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층으로 가는 계단을 오르기 전, 말린 장밋빛의 타일 바닥이 보인다. 슬그머니 만져보고는 도슨트를 따라 올라간다. 비로소 눈에 익숙한 스튜디오의 두 공간을 마주하는데 바로 작업실과 아틀리에다.
거대 마름모꼴의 작업실은 뒤로 갈수록 깊어 보이는 색다른 공간감을 선사한다. 해가 뜨고 지는 흐름을 따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경사지게 만든 천장도 눈에 띈다. 바지런한 시간을 보냈을 작업대도 살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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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을 감싸는 곡선형의 아틀리에로 들어서는 순간, 일행 모두가 탄성을 질렀다. 거대한 천장 높이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몰입감을 주었다. 주렁주렁 달린 펜던트 조명은 당시 디자인을 마치고 실물을 적용했을 때 느낌을 보기 위해 하나씩 설치했다고 한다. 나는 그 아래로 나란히 자리한 여러 개의 의자들에 시선이 갔다. 얼핏 보아도 대단한 나이를 가늠케 하지만 이들은 말없이 고요했다. 그림자를 따라 고개를 숙이는 기분마저 든다. 긴 세월을 보냈음에도 여전히 오늘과 같은 새로운 만남을 기다리는 사물의 조용한 환영 인사 같았다.
정신적인 풍요란 이런 것일까.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널찍한 유리창을 따라 온통 사람들의 숨소리만이 가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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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밖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트램을 기다린다. 감상의 역치가 한껏 높아져 여운이 쉽게 가시질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품은 사람처럼 쭈그리고 앉아 한참 동안 먼 산을 바라보았다. 두 가지 목표를 성실하게 이룬 만족감이 뒤늦게 밀려온다.
빛과 그림자가 골고루 들어차는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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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26일 목요일
스톡홀름으로 돌아가기 전, 헬싱키로부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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